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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차별데이데이] 병역거부, 너와 나의 연결고리
    • 작성일
    • 2018.07.04
  • 병역거부, 너와 나의 연결고리


    글 | 김민영 (전쟁없는세상 후원회원)


    어릴 적, 여성이며 ‘군필’인 아버지도, ‘생물학적 남성’인 형제도 없는 나에게 군대는 그리 친숙한 단어가 아니었다. 군필자가 있는 가정에서 때때로 들을 법한 군대 이야기나 곧 군대에 가야할 아들에 대한 걱정을 들을 일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빨간 줄이 긁혀 군대에 가지 ‘못’했고 꿈꾸던 공무원이 되지도 못했다는 아버지의 씁쓸한 회상은 오히려 군대와 관련이 없다는 것에 대해 어렴풋한 패배감을 느끼게 하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당사자도 아니고 당사자 가족도 아닌 나에게 군대와 병역거부에 대해 말하는 건 언제나 낯선 일이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올해 5.15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참가한 두 행사에서 병역거부 운동과 나 자신의 연결고리를 처음으로 찾았던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다. 


    ▲ 시민들로부터 꽃을 받은 병역거부자가 감옥에서 나오는 퍼포먼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행사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작되었다. 헌법재판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를 곧 가려내기 때문이었다. 감옥을 상징하는 철창을 설치했고, 그 안에는 병역거부자인 조은 활동가가 죄수복을 입고 들어갔다. 참가자들은 색색의 장미꽃을 철창 안에 갇힌 조은 활동가에게 건네주었다. 꽃을 든 사람들의 행렬이 끝나자, 죄수복을 입은 조은 활동가가 철창 문을 뻥 차고 밖으로 나왔다. 퍼포먼스일 뿐이었지만 정말 기뻤던 순간이었다. 양심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 이들이 실제로 석방되는 날이 얼른 오기를 바랐다. 


    ▲ 헌법재판소 앞에서 퍼포먼스를 마친 참가자들이 비를 맞으며 행진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계획했던 자전거행진은 취소되었다. 대신 퍼포먼스에 쓰였던 꽃을 들고 다함께 청와대 앞으로 행진한 뒤, 참여연대 2층에 모여 짧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활동은 대체복무제가 도입된다면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돌아가며 말해보는 활동이었다. 

    내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꽤 어려운 고민을 해야 했다. 병역거부자들이나 앞으로 군대에 가야할 이들이 아닌 ‘나’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상상해보는 일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남성들이 군대 얘기를 할 때 소외되는 일이 없어질 것 같다는 게 내 짧은 고민 끝에 나온 대답이었다.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 무수히 많은 술자리에서 선배들과 동기들의 군대 무용담을 듣는 일은 피곤한 일이었고, ‘개고생’을 겪은 친구들의 넋두리를 듣는 것 자체도 꽤나 고된 감정노동을 요하는 것이었다. 여성인 내 친구는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가 ‘어디서 감히 여자가’라는 망언을 들은 적도 있었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된다면,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기 때문에 발언할 수조차 없고 배제되어야 했던 일상적인 경험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처음 해 본 이 상상은 낯설었지만 신이 나는 일이었다. 징집 대사자가 아닌, 여성인 내가 병역거부권과의 연결고리를 처음으로 발견한 시간이었다.


    『병역거부: 변화를 위한 안내서』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지음/여지우 최정민 옮김/전쟁없는세상 엮음)


    이 날의 발견은 『병역거부: 변화를 위한 안내서』 북콘서트에서 더욱 튼튼해졌다. ‘페미니즘으로 바라본 평화운동과 남성성’이라는 주제로 이어진 토크쇼에서 여성으로서 병역거부 활동을 해온 여옥 활동가의 말이 특히나 가슴에 꽂혔다. 

    “제가 하는 활동을 옥바라지로 바라보더라고요.”



    어떤 운동에서나 그렇듯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힘이 있을 수밖에 없고, 당사자가 대부분 남성인 한국에서의 병역거부 운동에서는 특히나 젠더적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여옥 활동가는 그 과정에서 병역거부를 할 수 없는 여성인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운동에 있어 나의 언어를 찾기 위한 고민을 치열하게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의적 명분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일상과 공동체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언제나 그게 제일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병역거부: 변화를 위한 안내서』는 병역거부 운동이 젠더 뿐 아니라 장애, LGBTI 등 사회적 소수자와 만나는 교차성을 소개하고 있다. 기획자들은 책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 병역거부’, ‘병역거부 뿌셔뿌셔’ 같은 제목들을 생각했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나 또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변화를 위한 안내’를 받을 수 있길 바란다.




    『병역거부: 변화를 위한 안내서』 출간기념 북콘서트 참가자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이 있었던 지난 5월을 지나며 나의 일상에 파고든 군사주의와 젠더불평등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군대가 너무나 큰 권력을 갖는 사회는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나에게도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군대가 사회 전반에 생산해내는 가부장성이 중첩된 권력관계 속에서 나 또한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제야 비로소 병역거부 운동과 나의 끈끈한 연결고리를 찾게 되었다.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가 처음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시민사회는 앞으로 할 일이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병역거부 운동과 나의 연결고리를 찾았으니, 총을 들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라는 내 목소리도 전보다는 더 크고 당당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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